이번 회차에서 자기 이름을 불러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했습니다. “나는 뭘 못 참지?”가 아니라 “○○아, 너는 뭘 그렇게 못 참니?”로요.
그 자리에서 저는 “연구를 해봤더니 그 차이가 사라지더랍니다”라고만 말하고 넘어갔습니다. 실시간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그 연구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키가이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미처 말하지 못한 것 하나를 여기에 풀어 두겠습니다.
그 연구는 693명짜리였습니다

심리학에서 솔로몬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습니다. 남의 재판은 기가 막히게 잘 봤는데 자기 집안은 못 다스린 그 왕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이걸 실험으로 확인한 사람이 워털루대학의 이고르 그로스만과 미시간대학의 이선 크로스입니다. 2014년 『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Exploring Solomon’s Paradox」라는 논문이고, 세 개의 실험에 693명이 참여했습니다.
연구가 재본 건 ‘지혜로운 추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네 가지를 봅니다.
- 내가 아는 것의 한계를 인정하는가
- 상황이 앞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는가
-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볼 줄 아는가
- 타협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가
첫 번째 실험 결과가 그대로 솔로몬의 역설이었습니다. 같은 종류의 문제를 놓고, 그게 친구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할 때는 위 네 가지가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을 자기 일로 놓는 순간 눈에 띄게 떨어졌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어리석어진 게 아닙니다. 대상이 나로 바뀌었을 뿐인데 판단의 질이 내려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이야기입니다. 논문이 진짜로 한 일은 그다음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실험에서는 참여자에게 자기 상황을 3인칭으로 서술하게 했습니다. “나는 지금 이런 상황이다”가 아니라 자기 이름과 그, 그녀를 써서 적게 한 것입니다. 그러자 친구 일을 볼 때와 내 일을 볼 때의 격차가 사라졌습니다.
젊은 층에서만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논문의 부제에 ‘젊은 성인과 노년 성인’이 들어가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나이와 무관하게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회차에서 이름을 불러 보시라고 한 건 기분 전환용 장치가 아닙니다. 판단의 질 자체가 바뀌는 자리입니다.
“뇌를 찍어봐도 다르다”의 실제 기록
영상에서 뇌 이야기를 한 줄로 지나갔는데, 그 근거가 되는 실험은 따로 있습니다. 2017년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Third-person self-talk facilitates emotion regulation without engaging cognitive control」입니다. 미시간주립대의 제이슨 모저와 앞의 이선 크로스가 함께한 연구입니다.
두 개의 실험을 붙여 놓은 구조입니다.
실험 1(ERP) — 참여자에게 불쾌한 사진을 보여 주고 그때 드는 감정을 ‘나’로 떠올리게 하거나 ‘자기 이름’으로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두피에서 뇌 전위를 쟀습니다. 여기서 본 지표가 후기양성전위(LPP)입니다. 자기와 관련된 감정이 세게 올라올수록 커지는 신호인데, 이름으로 부른 조건에서 이 신호가 줄었습니다.
실험 2(fMRI) — 이번엔 안 좋았던 자기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름으로 떠올렸을 때, 괴로운 감정을 곱씹을 때 흔히 켜지는 자리의 활동이 덜 켜졌습니다.
이 논문에서 제가 제일 중요하게 보는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연구진이 노력과 관련된 뇌 활동도 같이 쟀다는 점입니다. 보통 감정을 가라앉히려면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하고, 그건 뇌에서 비용으로 잡힙니다. 그런데 3인칭으로 부른 조건은 1인칭일 때보다 노력이 더 들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요.
참는 게 아니라, 자리가 바뀌는 겁니다. 나를 한 발 떨어져서 보게 되는 이 구조는 에고와 참자아를 알아차리는 이야기에서 다룬 두 자아의 구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남에 대한 이야기처럼 처리됩니다. 애써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거리가 그냥 생깁니다. 그래서 영상에서 두 문장을 나란히 물어보시게 했을 때 “순간 멍해진다”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온갖 생각이 달려들던 자리가 조용해진 것이지, 여러분이 집중을 못 하신 게 아닙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 방법은 감정이 올라와 있을 때 특히 잘 듣습니다. 카드값이 급하고 마음이 급할 때 “나는 뭘 하러 왔지”가 안 굴러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이름을 부르는 쪽이 유리합니다.
이키가이 4원은 일본에서 온 게 아닙니다

이번 회차에서 이키가이를 해봤더니 거기 있는 사람이 제가 아니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시간이 없어 못 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네 개의 원은 일본 것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 / 잘하는 것 /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 / 돈이 되는 것 — 이 네 원이 겹치는 가운데를 이키가이라고 부르는 그림 말입니다. 이 도식의 출처는 이렇습니다.
| 연도 | 일 |
|---|---|
| 2011 | 스페인의 안드레스 주주나가가 ‘목적(Propósito) 다이어그램’을 만듭니다. 열정·사명·소명·직업 네 개가 겹치는 그림입니다 |
| 2012 | 보르하 빌라세카의 책 『Qué Harías Si No Tuvieras Miedo』에 이 그림이 처음 공개됩니다 |
| 2014 | 영국 블로거 마크 윈이 블루존 연구자 댄 뷰트너의 TED 강연에서 오키나와와 이키가이 이야기를 듣고, 주주나가의 그림에 ‘이키가이’라는 단어를 붙여 블로그에 올립니다 |
| 이후 | 그 한 편의 글이 퍼지면서 전 세계가 아는 ‘이키가이’가 됩니다 |
정작 일본에서 쓰는 이키가이에는 돈이 되는 것이라는 칸이 없습니다. 일본에서 이키가이는 관계에서도, 취미에서도, 매일 반복하는 사소한 일에서도 나옵니다. 직업이나 수입이 반드시 끼어야 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스페인 사람이 만든 커리어 도식에 일본 단어를 붙인 그림을 놓고 “내 사명이 뭘까”를 찾고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제가 영상에서 한 말이 왜 그랬는지가 더 분명해집니다. 다 쓰고 보니 거기 있는 사람이 제가 아니었던 이유요. 그 그림은 애초에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가’를 정리하는 도구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칸을 채울 때 자연스럽게 남 보기 좋은 답이 올라옵니다. 좋아하는 것 칸에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 걸 쓰게 되는 구조인 겁니다.
그래서 반대로 가야 합니다. 상상해서 채우는 칸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에서 찾는 쪽으로요. 싫어하는 것부터 쓰라고 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싫어하는 건 꾸며낼 수가 없습니다. 이미 겪어서 몸에 남아 있는 것이니까요.
이 대목은 전에 다룬 목표와 갈망은 다릅니다와 같은 자리입니다. 좋은 그림을 상상으로 채우면 실행이 오히려 깎인다는 것을, 가브리엘 외팅겐이 20년 넘게 실험으로 재본 이야기였습니다.
술집 여인의 조언은 원래 잘려나간 대목입니다
길가메쉬 이야기도 한 줄로만 지나갔는데, 원전 쪽에 흥미로운 사정이 있습니다.
먼저 순서를 정확히 해두면 이렇습니다. 길가메쉬는 여행 도중 시두리라는 술집 여인을 만나고, 그 뒤에 뱃사공 우르샤나비를 거쳐 우트나피쉬팀에게 갑니다. 불로초 이야기를 알려 주는 건 우트나피쉬팀이고, 길가메쉬가 그 풀을 손에 넣었다가 뱀에게 빼앗기는 것은 그 이후입니다. 술집 여인이 먼저고, 불로초가 나중입니다.
그런데 이 술집 여인의 대목이 판본마다 다릅니다.
- 구바빌로니아판에서 그녀는 길가메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찾는 그 생명은 끝내 못 찾을 것이다, 신들이 사람을 만들 때 죽음은 사람 몫으로 정해 두었으니 — 그러니 배를 채우고, 낮과 밤을 즐기고, 가정을 이루라고요. 학자 벤트 알스테르는 이 대목을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카르페 디엠’이라고 봤습니다.
- 그런데 후대에 신-레키-운닌니가 정리한 표준 바빌로니아판에서는 이 조언이 빠집니다. 그녀는 길을 알려주는 역할만 합니다. 바다가 험하고 죽음의 물을 지나야 하니 우르샤나비를 찾아가라고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목만 정확히 잘려나간 것입니다.
삼천 년 전 편집자가 무슨 생각으로 그 부분을 덜어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 사실 자체가 이야기 같습니다. 없는 걸 찾아 헤매지 말고 지금 있는 것에서 살라는 말이, 정작 그 이야기 안에서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디 있을지 모르는 재능을 찾으러 다니느라,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걸 못 봅니다.
하고 싶은 게 먼저 오지 않는 이유

회차 후반에 순서를 뒤집어 드렸습니다.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깊게 하다 보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니 재밌어지고, 재밌어지니 하고 싶어진다고요.
이건 제 경험담만이 아닙니다.
칼 뉴포트가 『So Good They Can’t Ignore You』에서 정면으로 다룬 주제입니다. 그는 ‘열정을 따르라’는 조언을 위험한 조언이라고 부릅니다. 열정 마인드셋은 “이 일이 나에게 무엇을 주는가”를 보는 태도인데, 이 시선으로 일하면 만성적인 불만과 “저기 어딘가에 더 나은 일이 있을 텐데”라는 공상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가 대신 제안하는 게 장인 마인드셋입니다. “내가 세상에 무엇을 내놓고 있는가”를 보는 쪽이죠.
동기 연구 쪽에서도 같은 그림이 나옵니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의 자기결정이론은 사람이 일을 즐기게 되는 조건으로 자율성·유능감·관계성 셋을 꼽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보실 건 유능감이 결과가 아니라 조건 쪽에 있다는 점입니다. 잘하게 되는 게 먼저고, 즐거움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싶은 게 없으신 건 문제가 아닙니다. 아직 뭔가를 잘하게 될 만큼 깊이 파본 적이 없으신 것뿐입니다. 순서가 아직 안 온 겁니다.
깊게 파는 것 자체를 다룬 회차도 있습니다. 하나의 질문을 붙들고 놓지 않을 때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황농문의 몰입에서 단계별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번 회차에서 “질문 하나를 계속 물으세요”라고 한 것이 바로 그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해보실 것
정리하면 세 줄입니다.
- 이름을 부르고 물으세요. “○○아, 너는 뭘 그렇게 못 참니?” 693명의 실험이 말하는 건, 이름을 부르면 내 문제를 남의 문제만큼 잘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 좋아하는 걸 채우려 하지 마세요. 네 개의 원은 애초에 남 보기 좋은 답이 올라오게 생긴 그림입니다. 싫어하는 것에서 시작하시면 꾸며낼 수가 없습니다.
- 찾은 그것을 나를 위해 한 번 써보세요. 작게요. 정리를 잘하시면 내 것 하나를 정리해 보시고, 설명을 잘하시면 내가 아는 걸 한 번 설명해 보시는 정도로요.
이번 회차 전체는 영상에 있습니다. 운명이 왜 돈일 수 없는지, 돈이 왜 목표가 아니라 부산물인지, 그리고 회사가 몇 년 동안 여러분에게 무엇을 만들어 두었는지까지 거기서 이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 질문을 매주 같이 붙들고 가는 자리가 위클리모티브입니다. 혼자 물으면 며칠 가다 흐려지는데, 같은 시간에 같은 질문을 여럿이 붙들면 다음 주에도 그 질문이 살아 있습니다.
멀리서 찾지 마십시오. 이미 하고 계신 것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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